인공지능(AI)은 이미 사회 전반의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고 있다. 행정, 금융, 의료, 교육, 산업 현장에서 AI는 분석과 예측을 넘어 판단과 실행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AI가 고도화될수록 기술적 성능과는 별개로 새로운 질문이 제기된다. 바로 AI의 판단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AI의 확산은 오히려 사회적 불안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AI의 본질적 한계는 블랙박스 구조에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도화된 판단을 수행하지만, 그 과정과 근거를 인간이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AI의 판단 결과가 왜 그렇게 도출되었는지 설명하기 어렵고, 오류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힘들다. AI가 사회의 핵심 의사결정 주체로 부상할수록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블록체인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된다. 블록체인은 단순히 암호화폐를 위한 기술이 아니다. 블록체인의 본질은 데이터를 변경 불가능한 형태로 기록하고, 신뢰를 중앙 권한 없이 분산 구조로 확보하는 데 있다. AI 시대의 블록체인은 거래 기록 기술을 넘어, 신뢰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AI가 판단을 수행하는 두뇌라면, 블록체인은 그 판단을 기록하고 검증하는 신경망이라 할 수 있다.


AI와 블록체인의 융합은 특히 AI의 의사결정 검증 영역에서 핵심적 의미를 가진다. AI가 내린 판단과 그 결과, 사용된 데이터의 출처와 처리 과정이 블록체인에 기록된다면, 사후 감사와 검증이 가능해진다. 이는 AI의 투명성을 높이고, AI 결정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 AI가 설명 가능한 기술로 진화하기 위해 블록체인은 필수적인 보완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데이터 주권과 데이터 경제 측면에서도 두 기술의 융합은 중요하다. AI 시대의 핵심 자원은 데이터이며, 데이터는 개인과 기업, 국가의 전략 자산이다. 블록체인은 데이터의 소유권과 사용 이력을 명확히 기록함으로써, 데이터 제공자에게 정당한 권한과 보상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데이터가 일방적으로 수집되고 소비되는 구조에서 벗어나, 공정한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다. AI는 데이터를 소비하는 기술이고, 블록체인은 데이터 질서를 설계하는 기술이다.


공공 영역에서 AI와 블록체인의 결합은 더욱 중요하다. 행정, 조달, 복지, 세금, 규제 집행과 같은 분야에서 AI 기반 자동 의사결정이 확대되고 있다. 이때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이 불투명하다면, 행정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어도 국민 신뢰는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AI의 자동 판단 위에 블록체인을 결합하면 정책 결정 과정이 기록되고 감사 가능한 구조가 형성된다. 이는 AI 행정 국가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한국의 블록체인 산업을 돌아보면 기술 역량 부족이 근본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암호화폐 중심의 인식과 활용 프레임에 갇혀 블록체인의 본질적 가치가 충분히 구현되지 못한 점이 문제다. 이제 블록체인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 해결 수단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AI와 결합한 공공 서비스, 산업 데이터 관리, 신뢰 기반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 새로운 돌파구가 된다.


향후 AI와 블록체인의 상호 발전 방향은 분명하다. AI는 더 많은 권한을 위임받는 기술로 진화하고, 블록체인은 그 권한 행사를 통제하고 기록하는 기술로 발전한다. AI 없는 블록체인은 활용처를 잃게 되고, 블록체인 없는 AI는 신뢰를 잃게 된다. 두 기술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공진화 관계에 있다.


지금은 ‘AI 문명 시대’라고 한다. ‘AI 문명’의 성패는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신뢰 구조에 달려 있다. AI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기술이고, 블록체인은 인간의 불신을 관리하는 기술이다. 이 두 기술이 조화롭게 융합될 때, 우리는 비로소 신뢰 가능한 AI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출처 : 블록체인투데이(https://www.blockchain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