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진 서강대학교 AI⋅디지털자산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대한민국 가상자산 거래소 시장의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그동안 시장은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진 업비트와, 공격적인 수수료 정책과 파격적인 이벤트로 30%대 점유율을 회복하며 맹추격하는 빗썸의 ‘1강 1중’ 구도였다.


그러나 최근 들려오는 소식들은 이 견고한 구도에 균열을 예고한다.


네이버파이낸셜과 업비트의 결합 시너지에 대한 업계의 관측, 바이낸스의 고팍스 인수 절차 마무리,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래에셋그룹의 코빗 인수 추진은 시장의 성격을 단순한 점유율 경쟁에서 ‘금융 생태계의 확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 거래소들의 경쟁 문법은 단순했다. "수수료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는가", "어떤 코인을 상장할 것인가"가 주된 무기였다. 하지만 네이버, 바이낸스, 미래에셋이라는 거대 자본과 플랫폼이 참전하는 전장은 양상이 다르다.


‘수수료 경쟁’을 넘어 ‘인프라의 확장’으로


업비트와 네이버파이낸셜의 만남은 디지털자산이 투자의 영역을 넘어 일상으로 침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국내 최다 이용자를 보유한 네이버페이의 결제 인프라가 업비트와 결합한다면, 암호화폐는 실질적인 결제와 송금의 수단으로 그 효용성을 검증받게 될 것이다.


고팍스와 바이낸스는 ‘글로벌 유동성’을 무기로 한다. 세계 최대 거래소의 상품 운용 노하우가 이식된다면, 투자 상품의 빈곤에 시달리던 국내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가장 파괴적인 잠재력을 가진 것은 코빗과 미래에셋의 결합 가능성이다. 이는 전통 금융(TradFi)이 크립토를 정식으로 품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래에셋의 자산운용 역량이 코빗과 만나면, 비트코인 현물 ETF는 물론 토큰증권 시장 선점, 커스터디 등에서 우위를 점하며 ‘하이브리드 자산 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넘어야 할 산'...'생태계 오케스트레이터'로의 진화


물론 이러한 전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금산분리’와 같은 규제의 벽이 전향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미래에셋이 코빗을 인수하여 실질적인 시너지를 내려면, 대한민국 정부가 디지털자산을 제도권 금융의 일부로 인정하고 빗장을 풀어주어야 한다. 이 규제의 매듭이 풀릴 때 비로소 거대 자본과 혁신 기술의 결합이 시작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진입 이후의 전략이다. 거대 자본이 들어와 단순히 덩치만 키워서 수수료 시장을 나눠 먹는 것은 산업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새로운 경쟁 체제에서 거래소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스타트업에게 기술적, 재무적 토양을 제공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부가가치를 흡수하여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 오케스트레이터(Ecosystem Orchestrator)'가 되는 것이다.


미국의 코인베이스가 자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열어 개발자들에게 판을 깔아주었듯, 한국의 거래소들도 ‘인큐베이터’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네이버와 미래에셋 같은 기업들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컴플라이언스 노하우, 검증된 비즈니스 네트워크, 그리고 대규모 트래픽 처리 역량이야말로 초기 단계의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인프라다. 진정한 시너지는 이러한 전통 기업의 안정적인 자산이 스타트업의 기술적 민첩성과 결합할 때 발생한다.


가령 거래소가 금융권 수준의 보안 규정을 준수하는 커스터디 인프라를 API 형태로 개방한다고 가정해 보자. 스타트업들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보안 시스템을 직접 구축하는 대신, 이 인프라 위에서 즉시 작동하는 혁신적인 결제나 송금 솔루션을 설계할 수 있다.


또한, 핀테크 기업들은 거래소가 제공하는 풍부한 유동성을 기반으로 정교한 파생 상품을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스타트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비즈니스 모델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실질적인 협력이다.


따라서 향후 디지털자산 거래소의 기업 가치는 단순한 거래 수수료 수익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서드파티 서비스가 해당 거래소의 인프라 위에서 구동되는가"로 재평가될 것이다. 폐쇄적인 플랫폼 안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모델은 한계에 다다랐다. 결국 시장의 주도권은 '누가 더 높은 진입 장벽을 쌓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넓은 협업의 인터페이스를 여느냐'에 달려 있다. 자체적인 수익 모델을 넘어 스타트업과 함께 시장의 총량을 키우는 장기적인 안목과 실행력, 그것이 차세대 디지털자산 거래소의 생존을 가를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다.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