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은행은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라는 해답을 찾으며 영국을 '핀테크 종주국'으로 이끌었다. 사진은 영란은행 전경.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은 ‘안 된다’는 이유를 찾을 때, 영란은행(BoE)은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를 설계했다.


 



박혜진 서강대 주임교수. 

[박혜진 서강대학교 AI·디지털자산 최고위과정 주임교수]이 한 문장은 대한민국이 스스로를 ‘IT 강국’이라 자부하면서도 왜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는 ‘핀테크의 무덤’이라는 평가를 받는지, 그리고 왜 영국은 여전히 ‘핀테크 종주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잇따라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민간, 특히 핀테크 기업과 같은 비은행(Non-bank) 주체가 화폐 발행 영역에 참여하면 ‘코인런’이 발생해 금융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다는 논리다. 


요지는 “위험하니 신중해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메시지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소극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같은 위험을 바라보는 영국의 시각은 매우 다르다. 영란은행이 최근 발표한 스테이블코인 관련 보고서를 보면, 위험을 이유로 시장을 닫는 대신 위험을 설계로 관리하려는 접근이 돋보인다.


영국 '위험=관리 가능한 구조’ vs 한국 '위험=진입 금지’


영란은행도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초래할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위험이 존재한다고 해서 민간 참여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을지를 제도적으로 설계한다.


예를 들어, 영란은행은 비은행 발행사에게도 문을 열되, 준비자산의 일정 비율(40%)을 중앙은행 계정에 예치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필요할 경우 중앙은행의 자금으로 안정적으로 상환될 수 있도록 안전판을 제공하는 조치다. 민간 혁신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면서도 안정성을 확보하는 ‘균형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접근은 이와 대비된다. 한국은행은 “비은행은 중앙은행 계좌를 사용할 수 없어 위험하다”는 구조적 문제를 반복 강조하지만, 정작 그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설계에 대해서는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안전성 우려 자체는 타당하지만, 해결책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은행 예금 이탈 우려? 영국, ‘금지’ 아닌 ‘속도 조절’로 풀어


한국은행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따른 은행 예금 이탈 우려다. 그러나 영란은행은 이를 단순히 위험 요인으로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유 한도라는 구체적 제도를 설계했다. 개인·기업이 보유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 양에 제한을 두어, 기존 은행 시스템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확보하도록 한 것이다. 이 한도는 시장 상황에 따라 점진적으로 완화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즉, 위험을 이유로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완화하는 방법을 정책적으로 마련하는 접근이다. 반면 한국은행은 문제가 제기된 이후에도 구체적 수치나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아 논의가 추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행 전경. 사진=연합뉴스

소비자 보호도 ‘원칙’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영란은행은 발행사가 파산하더라도 고객 자산이 보호될 수 있도록 ‘법정신탁’ 제도를 도입했다. 고객 자산을 발행사 자산과 엄격히 분리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정리 비용까지 사전에 적립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소비자 보호를 선언적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메커니즘으로 끌어올린 사례다.


한국에서도 소비자 보호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나, 실질적 제도 설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선언보다 구조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영국의 접근은 참고할 만하다.

‘어떻게’를 고민하는 중앙은행이 경쟁력을 만든다


영란은행 총재 앤드류 베일리는 보고서에서 “우리의 임무는 혁신을 막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신뢰받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혁신을 제도 틀 안에서 관리하고 활용하려는 영국의 철학과 그들이 왜 핀테크 종주국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할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은행 역시 위험을 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위험을 단순히 ‘회피해야 할 요소’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설계와 규율을 통해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다룰 때 금융 생태계의 미래가 열린다.

한국이 더 이상 ‘핀테크의 무덤’이라는 평가에 머물지 않으려면, 이제는 “왜 안 되는가”보다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민간과 중앙은행이 협력해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규율 체계를 설계하고, 원화의 디지털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