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기반 항만 물류 최적화 착수


기존엔 터미널 운영사 모두 달라

컨테이너 찾기 '수천번 클릭'


비효율성 해결위한 승부수

물류체계 획기적 개선 이뤄내

“블록체인 기반의 항만 데이터 확보로 내년부터 인공지능(AI) 기반 물류 최적화의 길이 열렸습니다.”


부산항 10개 터미널…블록체인으로 잇다

송상근 부산항만공사 사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도의 복잡성을 지닌 부산항 물류 체계가 올해부터 개선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세계 2위 환적항인 부산항은 1개 터미널과 운영사를 보유한 싱가포르와 달리 10개 터미널에 각각 운영사를 갖췄다. 계약 관계상 ‘을’의 입장인 터미널 운영사는 ‘갑’인 선사 정보를 함부로 공유할 수 없는 처지다.

육상 운송으로 넘어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컨테이너 화물 운송 정보를 화물차 기사에게 전달해야 하는 운송사 직원들은 10개 터미널 운영사 홈페이지를 켠 채로 컨테이너를 찾기 위해 하루 수천 번 마우스를 클릭해야 한다. 부산항을 이용하는 화물차 운전기사는 2만 명에 육박한다.


부산항 10개 터미널…블록체인으로 잇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서 컨테이너는 분초별로 움직인다. 가장 상단의 컨테이너는 순식간에 다른 장소로 흩어진다. 상단의 컨테이너를 배정받아 움직인 화물차는 다른 블록의 어느 하단에 묻힌 컨테이너를 찾아야 한다. 겨우 찾은 화물은 정보가 공유되지 않은, 환적 선박에 실릴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옆 터미널로 옮겨야 한다. 부산항의 지난해 환적 물동량은 1350만 TEU. 단순 평균을 내면 하루 3만700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미주 대륙과 아시아·유럽을 잇는 항로의 중심지 부산항을 운영하는 부산항만공사는 이런 비효율성을 해결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블록체인이다. 정보의 분산 저장과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는 블록체인의 기술 철학이 부산항 이해관계자의 정보 공유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봤다. 정보를 모든 이해관계자와 공유하면서도 내 정보는 오직 관계자만 볼 수 있는 블록체인 특성 때문에 모든 터미널 운영사가 플랫폼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올해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항만 효율성의 핵심 지표인 복화율 개선과 관련된 그룹 오더 건수는 지난달 1만5739건으로, 작년 10월(1916건)보다 8배 가까이 뛰었다. 항만에 들어가는 트럭 기사에게 운송장이 모바일로 실시간 전달되고, 운송사는 이 정보를 기반으로 터미널을 오가는 트럭이 여러 화물을 처리하는 체계가 마련됐다.


블록체인이 가져온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화물차와 컨테이너, 선박의 움직임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트럭이 부산항 드나들때 '블록체인 알람'

완전 자동화 항만으로 거듭난다…'디지털 프리게이트' 안착

완전 자동화 항만으로 구축된 부산항 부산신항 제7부두.  한경 DB

완전 자동화 항만으로 구축된 부산항 부산신항 제7부두. 한경 DB

부산 사하구 감천항을 드나드는 트럭 기사에게 알람이 울린다. 부산항만공사(BPA)가 설정한 가상구역에 트럭이 지나가면 기사의 ‘올컨e’앱을 통해 컨테이너 작업 정보가 기입된 전자인수도증이 자동으로 발급된다.

‘디지털 프리게이트’로 불리는 이 사업은 가상 경계를 설정해 트럭의 진·출입 시 알림 기능을 실행하는 위치 기반 기술인 ‘지오 펜싱(Geo-Fencing)’이 적용됐다. 항만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기존의 물리적 출입 공간인 외부 철송장으로의 화물차 집중도를 분산한다. 트럭 기사의 안전과 편의는 물론 항만 운영 효율성까지 확보하며 4개월의 운영 기간 이용률은 83%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BPA가 발표한 감천항 디지털 프리게이트 사업은 부산항 일대의 물류 자동화 체계 상징과도 같은 사업이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터미널 운영사의 선사 정보 제공, 트럭 기사의 모바일 앱을 통한 전자인수도증의 활용이 결합하며 단절된 부산항 터미널을 잇기 시작했다.

◇ 1만8000 트럭기사에 블록체인 서비스

부산항 10개 터미널…블록체인으로 잇다

BPA가 항만물류통합플랫폼 ‘체인포털’을 구축하기 시작한 건 2019년. 선사 관련 데이터 공유를 꺼리는 터미널 운영사로부터 정보 제공 동의를 얻는 데까지 2년이 흘렀다. 이후 그룹 오더 기능까지 갖춘 TSS(환적운송시스템)와 VBS(차량 반출입 예약 시스템) 등이 개발됐지만 항만 효율성 지표가 개선되기 시작한 건 올해부터다. 일종의 시행착오를 겪은 셈인데, 화물을 직접 나르는 트럭 기사를 위한 전자인수도증 발급 시스템이 작년에 도입되면서 모든 시스템 이용을 위한 환경이 자연스레 구축됐다.

BPA는 전자인수도증 발급 기능이 들어간 앱 올컨e를 지난해 7월 전면 도입했다. 부산항을 이용하는 1만8000여 명의 화물 기사가 종이로 된 인수도증을 앱으로 확인하고 터치하기 시작했다.


트럭 기사가 전자인수도증을 사용할 것이라는 기본적인 신뢰 관계가 구축되면서 TSS를 이용하는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BPA에 따르면 지난달 TSS 활용 그룹 오더 이용 건수는 1만5739건으로, 전년 대비 8배 가까이 늘었다. TSS를 이용한 환적물량 처리는 이미 90%를 넘어섰다. 여기서 하나의 트럭에 다수의 컨테이너를 배정하는 그룹 오더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까지 올랐다.

◇ 자동화 항만으로 향하는 부산항

이 시스템의 핵심은 실시간 트럭 위치 공유에 따른 목적지 지정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특정 컨테이너를 지정해야 했다. 실시간 트럭 위치에 따라 최적의 컨테이너 배정이 TSS와 전자인수도증의 ‘결합’ 효과다. 컨테이너를 실은 차량은 다음 터미널로 도착해 컨테이너를 옮기고, 곧바로 전자인수도증을 갱신해 화물 적재와 이동을 반복한다. 과거엔 다시 컨테이너를 배정해야 하는 작업이 번거로워 화물을 한 번 옮기고 작업이 끝나는 사례가 빈번했다.


VBS를 비롯해 포트아이(환적모니터링시스템) 등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는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도 늘어난다. VBS는 트럭의 터미널 이동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개발된 서비스로, 예약 준수율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BPA는 내년 이 시스템에 인공지능(AI)을 적용해 트럭의 터미널 예상 도착 시간을 미리 계산해 혼잡도를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포트아이는 부산항 전체의 선박 스케줄을 실시간으로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시스템으로, 선석 스케줄 재조작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 복화율 세 배 ‘껑충’

자동화 시스템의 연동은 크게는 부산항과 부산신항, 작게는 10개 터미널로 분산된 환적항 인프라에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할 전망이다. 개별 선박이 부산항에서 화물을 내리고 싣는 과정에서 터미널 간 컨테이너 이동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터미널 정보 공유가 항만 비효율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열쇠가 된 셈이다.


트럭이 한 번 운행하면서 여러 화주의 화물을 싣는 비중을 의미하는 복화율은 시범운영 기간 12%에서 36%로 세 배 수준으로 뛰었다. BPA에 따르면 복화율이 50% 증가하면 타 부두 간 셔틀료를 연간 150억원가량 줄일 수 있다.


선사의 최종 목표인 적시 출발(JIT) 가능성도 높였다. 항만의 최종 목표는 결국 접안한 선박이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채 정해진 시각에 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동안에는 단절된 정보로 각종 기회비용이 발생했다면, 앞으로는 항만 생산성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BPA는 내다봤다. BPA에 따르면 관련 서비스 고도화로 환적 물동량 5% 증가 시 약 1013억원의 연관 산업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송상근 BPA 사장은 “데이터 기반의 항만 운영 체계가 틀을 갖춰가고 있다”며 “AI 적용 범위를 서서히 넓히면서 선박 JIT를 위한 유기적 연동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민건태 기자 minkt@hankyung.com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11266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