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진 서강대학교 AI⋅디지털자산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최근 일본 금융청(FSA)은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주요 가상자산 105종을 정식 금융상품으로 인정하는 방향의 제도 정비에 착수했다. 이는 단순히 자산을 분류하는 법적 변화가 아니다.
디지털자산을 ‘투자 가능한 금융상품’으로 제도권에 편입시키겠다는 선언이며, 기관투자자·은행·증권사 등 정통 금융기관들이 디지털자산을 취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조치다.
일본은 이미 스테이블코인 법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나라다. 여기에 더해 디지털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재정의함으로써 블록체인을 미래 금융 인프라의 정중앙에 위치시키고 있다.
미국도 같은 흐름이다. 하원을 통과한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은 디지털자산을 기능별로 구분해 성숙한 블록체인에서 발행된 자산은 SEC가 아니라 CFTC 관할로 두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규제기관 간 공백과 충돌을 제거하고, 디지털자산을 자본시장 내에서 정상적으로 거래·상장·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제도적 분수령’이다. 미국은 이미 현물 비트코인 ETF를 승인했고, 기관투자자들은 암호자산 커스터디·대출·유동성 공급 시장에 대거 진입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서는 디지털자산이 여전히 정식 자산군이 아니다. 법적 지위가 없으니 금융상품도 될 수 없고, 금융기관의 취급은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이로 인해 여러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다.
사진=연합뉴스
첫째, 현물 ETF가 불가능하다. 미국·홍콩·싱가포르에서는 이미 기관투자자용 ETF와 ETP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제도적 인정 자체가 없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기관투자자의 참여는 단순 투자를 넘어 투명한 가격 형성, 감독 강화라는 효과를 가져오며 시장 안정성을 높인다. 반면 대한민국 국민은 해외 계좌를 통해 역외 ETF에 투자해야하고, 국내 금융기관은 이 거대한 시장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둘째, 제도권 금융과의 연결이 불가능하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는 디지털자산을 다룰 수 없고, 커스터디나 운용 상품도 만들지 못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디지털자산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 기반’을 잃게 만드는 상황이다.
셋째, 유동성·투명성·보호 체계가 왜곡된다. 자산 인정을 하지 않으니, 제대로 된 회계 기준·공시·내부통제 의무를 부과할 수도 없다. 거래소마다 공시와 감사 기준이 제각각이고, 글로벌 수준의 준비금 증명 체계를 강제할 수도 없으며, 투자자 보호 장치(보험, 준비금 펀드 등)도 정착되지 못한다. 결국 투명성과 보호 수준은 낮은 상태로 유지되고, 투자자들은 더 안전한 해외 플랫폼으로 자산을 이동시키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의 규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모순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디지털자산을 “금융상품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금융상품처럼 규제”하고 있다. 금융도 아니고 투자자산도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모든 인허가와 감독은 금융위원회가 맡고 있다. 즉, 자산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규제는 금융의 잣대를 적용하는 이상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이 자산을 금융으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이미 금융처럼 작동하는 이 시장을 어떻게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할 것인가”다. 일본과 미국은 이미 답을 찾기 시작했고, 새로운 금융 인프라의 설계권을 선점하고 있다.
자산으로 인정해야 보호가 가능하고, 자산으로 인정해야 금융이 되고, 자산으로 인정해야 산업이 성장한다. 한국이 이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금융질서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다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
네이버 로그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