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AI⋅디지털자산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박혜진] 홍콩이 최근 디지털자산 거래소에 글로벌 유동성 연동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는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홍콩이 디지털 자산 시장의 글로벌 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다. 거래소들이 전 세계 오더북(order book)을 공유하고, 해외 투자자 유입을 자유롭게 허용할 수 있게 되면, 홍콩은 곧 ‘아시아의 디지털자산 뉴욕’이 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전 세계 디지털 자산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준다. 자금의 경계는 이미 사라졌고, 유동성은 규제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미국과 유럽, 중동, 홍콩, 싱가포르 등은 글로벌 거래소 간 유동성 연동(Shared Liquidity) 구조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그 결과, 투자자는 어느 나라 거래소를 이용하든 글로벌 시세·거래량을 동일하게 누릴 수 있게 된다. 투자 접근성과 효율성은 곧 그 시장의 신뢰도를 결정한다.


한국은 아직 ‘섬’이다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바이낸스가 고팍스 인수를 마무리하며 다시 한국 시장에 복귀했다. 이제 관심사는 명확하다 — 고팍스가 바이낸스의 글로벌 오더북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가능하다면, 한국 투자자는 단일 거래소 안에서 글로벌 유동성과 동일한 가격·거래량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곧 한국 시장의 체급을 단숨에 바꾸는 일이다. 국내 거래소의 한정된 유동성과 비효율적인 가격 형성(‘김치 프리미엄’) 구조를 완화하고, 한국 투자자가 글로벌 자본 시장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 금융정보분석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바이낸스·고팍스 간 오더북 공유 승인 여부에 대해 "공식 논의된 바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승인이 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현재 한국은 은행권을 통한 ‘그림자 규제’로 인해 VASP(가상자산사업자) 라이선스를 보유한 거래소들이 해외로 자금을 이체하거나 외화 결제 기능을 제공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는 어떤 국내 거래소도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진출을 시도할 수 없다. 결국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 거래소로 우회하고, 국내 거래소는 폐쇄된 시장의 반복된 경쟁 속에 수익성을 소진한다. 역차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 빗썸 거래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거래소는 ‘플랫폼’이 아니라 ‘금융 인프라’다


해외는 어떨까. 미국의 대표적인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단순한 거래소가 아니라, 미국 디지털 자본시장의 대표 금융 인프라로 성장했다. 기업공개(IPO) 후 시가총액은 150조를 넘나들고,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코인베이스의 수익구조는 단순 수수료에 머물지 않는다. 기관투자자를 위한 커스터디(수탁), RWA(현실자산 토큰화) 연계, AI 트레이딩 도구, 그리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협력한 합법적 파생상품 거래 등 완전한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에는 AI 에이전트간 결제에 특화된 x402 프로토콜을 공개하며 디지털자산과 스테이블코인, AI가 만드는 미래 생태계의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 즉, 코인베이스는 “거래소”를 넘어서 미국 디지털 금융 시스템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 모델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의 거래소들도 단순 거래소 경쟁을 넘어 글로벌 유동성 네트워크의 일부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거래소들이 가진 기술력과 역량을 글로벌에서 펼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업비트나 빗썸이 홍콩, 싱가포르, 중동 등으로 진출해 한국형 프로젝트, 원화 스테이블코인, RWA 자산을 글로벌 시장에 상장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한국 자산의 세계화다. 이것이야말로 국가 차원의 전략산업으로서 디지털금융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이다.



사진=연합뉴스

진짜 ‘투자자 보호’는 개방된 시장에서 나온다


디지털 자산은 본질적으로 국경을 초월한 자본이다. 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명확하다. “닫힌 규제”에서 “열린 질서”로 나아가야 한다.

홍콩은 이미 문을 열기 시작했고, 싱가포르와 두바이도 글로벌 거래소를 품었다. 이제 한국도 거래소들이 해외에 진출하고, 글로벌 자본과 직접 맞붙을 수 있도록 제도적 문을 열어줘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산업 육성이 아니라, 투자자의 권리와 시장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자본은 열린 곳으로 흐른다. 그리고 그 흐름을 설계할 수 있는 나라만이 다음 세대의 금융 중심이 될 것이다.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