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문제 손도 못 대고 악화일로

프리드리히 메르츠(왼쪽부터)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지난 5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은 저성장과 나랏빚, 포퓰리즘 부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프리드리히 메르츠(왼쪽부터)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지난 5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은 저성장과 나랏빚, 포퓰리즘 부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빅3’의 경제 실패는 불안정한 정치 구조에 더해 이를 파고든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 세력의 부상과 연결돼 있다.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8월 “유럽 국가에서 재정 적자와 포퓰리즘 간 파멸의 고리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재정 적자가 커진 각국이 시장 신뢰를 잃지 않으려 긴축 재정을 시도해 왔지만, ‘재정 중독’에 빠진 대중의 반발과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결합해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 압력이 오히려 커지는 ‘딜레마’ 상황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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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스트 득세한 유럽 빅3

막대한 나랏빚에 시달리는 프랑스는 포퓰리즘으로 경제 정책 혼란이 이어지는 대표적인 국가로 꼽힌다. 지난 7월 프랑수아 바이루 당시 프랑스 총리는 나랏빚 문제를 해결하려 정부 지출 동결과 공휴일 축소 등을 포함해 440억유로(약 72조7000억원) 규모의 긴축 재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우파와 좌파 모두에게서 지지를 얻지 못하며 외면당했다. 다수당인 좌파연합은 복지 삭감이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타격을 줄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에 나섰고, 강경 우파 세력 역시 연금이나 복지 축소가 노년층이나 정부 공무원 등 지지 기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반대했다.


결국 지난달 의회의 신임 투표에서 과반수 불신임으로 바이루 내각은 실각했다. 뒤를 이은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도 임명 27일 만인 지난 6일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다시 임명되기도 했다. 2023년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사임 이후 총 5명의 총리가 의회 내 예산·재정 정책 갈등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독일 역시 독특한 정치적 구조 때문에 일관된 경제 정책 추진이 쉽지 않다. 독일은 의원내각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여러 정당이 골고루 의석을 얻는 다당제 구조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두 개 이상 정당이 모여 연정 내각을 구성하는데, 각 당의 정책 노선이 극단적으로 벌어지거나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책 추진이 어렵다.

지난해 11월 해체된 ‘신호등 연정’ 내 갈등이 대표적이다. 2021년 독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은 총선에서 제1당에 올라서며 자유민주당, 녹색당과 연정을 꾸렸다. 빨강(사회민주당), 노랑(자유민주당), 초록(녹색당) 등 각당 상징색이 신호등 색과 일치해 ‘신호등 연정’이라 불렸다. 하지만 재정·기후 정책에 있어 차이가 컸다. 지난해 11월 자유민주당 소속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은 법인세 인하, 사회복지 예산 삭감, 노동시간 연장 등을 주장하며 친기업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자 갈등이 표면화됐다.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은 긴축·친기업 정책에 반대하며 유권자 표를 의식해 사회복지 유지와 환경 정책 강화를 요구했다. 결국 그해 11월 3년 만에 신호등 연정은 붕괴됐다.

영국도 의원내각제 국가지만 실질적으로는 보수당·노동당 양당 구조가 지속되면서 정치적 분열이 심해지고 있다. 특히 지난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계기로 국민 여론이 갈라지고, 이민자 정책이나 복지 삭감 등에서 의견 마찰이 심해지고 있다.

그래픽=김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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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파멸의 고리 형성”

유럽 빅3의 포퓰리즘 확산 때문에 재정, 연금, 노동 개혁 등 각종 개혁의 추진은커녕 재정 건전성 악화를 더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민자 급증과 물가 상승, 낮은 경제성장률에 지친 유권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프랑스·독일·영국에서 포퓰리스트나 강경 우파 정당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유럽 빅3 국가의 정당 지지도에서 강경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 모두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8월 여론조사에서 강경 우파 정당인 국민연합(RN)의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36%의 지지율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꼽혔다. 올해 2월 영국에서 진행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영주권 제도 폐지와 외국인 복지 혜택 제한, 법인세 인하 등을 주장하는 영국 개혁당의 지지율이 집권 노동당과 제1 야당 보수당을 앞서기도 했다. 독일도 지난 8월 강경 우파 포퓰리즘 성향의 독일을위한대안(AfD)이 집권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을 제치고 처음으로 정당 지지율 1위에 오르는 등 세를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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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저 : https://v.daum.net/v/20251020005049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