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가짜 회사와 ‘코딩 과제’의 덫… 사람의 신뢰를 뚫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의 63억 달러(약 8조 4,000억원) 금고를 연 열쇠는 첨단 암호학적 결함이 아닌 '사람의 심리'였다. 바이낸스가 3일 공개한 초기 보안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커 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는 지난 9월 전문 직업 소셜 네트워크(링크드인 등)를 통해 바이낸스 핵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프로젝트 디렉터 직책을 제안하며 접근했다.

해커들의 공작은 치밀했다. 가짜 인사 담당자가 실제 화상 통화로 1차 면접을 주관했고, 일상 브이로그와 사진이 꾸준히 올라오던 위장 소셜미디어 계정을 보여주며 피해자의 경계심을 완전히 허물었다. 2차 면접에는 가상의 기업 최고경영자(CEO)까지 등장해 자연스럽게 면접을 이끌었다. 그러나 면접관, CEO, 회사 법인 모두 실재하지 않는 북한 공작조의 정교한 유령 인프라였다. 2차 면접 말미에 "기술 역량을 검증하겠다"며 전송된 코딩 테스트 과제 파일을 엔지니어가 업무용 노트북에 내려받아 실행한 순간, 바이낸스의 심장부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개발 도구 ‘pyenv’ 변조와 내부 AI 도구 역이용… 내부망 전면 장악

엔지니어가 실행한 코딩 과제 파일 안에는 최신 엔드포인트 보안(EDR) 프로그램조차 잡아내지 못한 변조 악성코드가 은닉되어 있었다. 이 악성코드는 파이썬 개발자들이 가상 개발 환경을 관리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정상 오픈소스 도구인 pyenv를 해커의 지휘제어(C2) 서버와 통신하는 변조 바이너리로 감쪽같이 교체했다.

감염 단말기를 거점으로 확보한 해커들은 바이낸스 사내에서 엔지니어들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사용하던 '내부 AI 도구'와 개발자 접근 권한을 탈취했다. AI 도구를 지렛대 삼아 내부 지갑 관리 인프라의 권한 구조와 서명 메커니즘을 역설계한 뒤, 월렛 인프라 담당 엔지니어들의 단말기로 수평 이동(Lateral Movement)하며 핵심 키 관리 시스템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수개월간 흔적을 지우며 암약하던 공격자들은 마침내 10월 29일 대규모 자산 탈취 스위치를 올렸다.

EIP-7702 권한 우회와 63억달러 유출… ‘98% 보전’으로 뱅크런 방어

자산 유출 과정에서는 이더리움 생태계의 최신 표준 중 하나인 'EIP-7702'의 실행 권한 위임 구조가 악용되었다. 해커들은 탈취한 내부 서명 권한을 바탕으로 바이낸스 핫월렛에 비정상적인 외부 실행 코드를 연결하여, 거래소가 수립해 둔 다중서명(Multi-sig) 검증과 내부 승인 프로세스를 완전히 우회한 채 거액의 자금을 외부로 빼돌렸다.

이번 사태로 흔들린 자산은 총 63억 4,000만 달러에 달하며, 단일 금융 보안 사고 기준 역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바이낸스는 침해 인지 즉시 서클, 테더 등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및 파트너 거래소들과 긴급 공조를 가동해 약 28억 5,000만 달러를 블랙리스트 동결 조치했다. 이어 자체 보유 현금과 장외시장(OTC) 현물 매입을 총동원해 유출 자산의 98%를 거래소 자금으로 보충하며 대규모 뱅크런 사태를 막아냈다.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북한 해커들이 현재 솔라나와 비트코인을 오가며 자금 세탁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바이낸스의 뼈아픈 공식 보고서는 아무리 막대한 자본과 최첨단 보안 장비를 겹겹이 두른 테크 기업일지라도 '사람의 신뢰'를 노린 사회공학적 기법 앞에서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치명적인 경고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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