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미카 시행과 글로벌 유통량 유지의 역학

유럽연합(EU)의 포괄적 가상자산 규제법인 미카(MiCA)가 본격 시행되면서 유럽 내 테더(USDT)의 거래 접근성은 단계적으로 축소되고 있으나, 글로벌 시장 전체의 유통량과 수요에는 유의미한 타격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블록체인 분석 플랫폼 아르테미스(Artemis)의 알렉스 웨슬리 연구원은 온체인 데이터상 미카 규제가 USDT의 전체 공급 규모나 블록체인 간 자금 이동에 뚜렷한 감소세를 유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카는 스테이블코인을 전자화폐토큰(EMT)과 자산준거토큰(ART)으로 세분화하고, 발행사에 대해 준비자산 건전성, 공시 의무, 상환 권리 보장, 라이선스 인가 등 엄격한 법적 요건을 강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코인베이스, 바이낸스, 크라켄 등 유럽경제지역(EEA)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비인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부담을 덜기 위해 USDT 관련 거래 페어를 상장 폐지하거나 취급 기능을 제한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재는 규제권 내 플랫폼의 공식 거래 지원을 축소한 조치일 뿐, 개인 지갑 간 보유나 블록체인 전송 자체를 봉쇄하지 못해 글로벌 공급량 약 1,830억 개 수준을 유지하는 등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으로서의 입지를 견고하게 지켜내고 있다.

신흥국 실사용 수요와 미국 기관 중심 USDC 간의 영역 차별화

USDT의 글로벌 수요가 유럽의 거래 축소 조치에도 흔들리지 않는 핵심 배경에는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신흥국 시장에서의 확고한 실사용 지배력이 자리하고 있다. 극심한 법정화폐 인플레이션과 통화 가치 불안정으로 달러 접근성이 제한적인 국가들에서 USDT는 단순한 암호화폐 매매용 수단을 넘어 실질적인 달러 저축, 국경 간 송금, 실물 상품 결제의 필수 인프라로 안착했다.

시장 점유율 구조를 살펴보면 스테이블코인별 용처와 주도권이 명확히 갈린다. USDT가 미국 외 역외 중앙화 거래소(CEX)의 기축 유동성과 신흥국 실물 송금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있다면, 경쟁 자산인 USDC는 엄격한 규제 준수를 바탕으로 미국 제도권 기관 시장, 탈중앙화 금융(DeFi) 프로토콜의 담보 자산, 기업 간(B2B) 정산 시장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유럽 거래소의 규제 장벽이 신흥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USDT의 실물 달러 대체 수요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글로벌 차원의 공급량 급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규제 관문 중심의 지각변동과 향후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이원화 전망

유럽 내 규제 충격은 글로벌 총량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역내 시장 점유율 구조에는 뚜렷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USDT 지원이 중단된 유럽 규제 대상 플랫폼에서는 미카 인가를 획득한 USDC와 유로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EURC 등으로의 유동성 이동이 가속화됐다. 최근 발표된 시장 연구 역시 유럽 플랫폼 내 USDC 점유율은 급증했으나 글로벌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장 점유율 및 거래량의 거시적 변화는 극히 제한적이었다고 분석하며, 규제 효과가 유럽 내부의 게이트웨이에 국한됐음을 확인했다.

향후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지역별 규제 환경에 따라 구조적 이원화 양상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및 선진 규제권에서는 라이선스를 확보한 규제 순응형 스테이블코인이 시장을 대체하고, 달러 수요가 절실한 신흥국과 역외 시장에서는 USDT의 우위가 유지되는 구도다. 다만 향후 타 국가들이 유럽과 유사한 고강도 발행사 인가 규제를 도입하거나 글로벌 주요 거래소들의 취급 제한 조치가 연쇄적으로 확산될 경우 현 수급 체계에 균열이 생길 수 있으므로, 총발행량 지표뿐만 아니라 온체인 송금량, 거래소 유동성 분포, 지역별 점유율 추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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