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보다 쾌적…공항서 먹고 자는 노숙인들]
짐수레에 검은 봉지·컵라면 등 각종 생필품 가득
공항 측 "장기 체류자 상담·귀가 유도·자활 연계"
누군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기 위해 공항에 남고, 누군가는 갈 곳이 없어 공항에 머뭅니다. 같은 긴 의자에 앉아도 한쪽은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다른 한쪽은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기자는 늦은 밤부터 아침까지 인천공항에 머물며 여행객과 노숙인이 같은 공간을 어떻게 나눠 쓰는지 살펴봤습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여행 어디로 가세요?", "아니요. 그냥 좀 쉬었다 가요."
지난 6일 오후 10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기자는 공항 안에서 밤을 보내는 장기 체류 노숙인의 생활을 살펴보기 위해 7일 오전 6시까지 약 8시간 동안 공항에 머물렀다. 일부 체크인 카운터 운영이 끝난 뒤에도 긴 의자와 닫힌 매장 앞에는 짐수레, 담요, 비닐봉지를 곁에 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기자도 한쪽 긴 의자에 몸을 눕히고 밤을 보내며 노숙인들과 여행객을 만났다.
출국장 긴 의자에 남은 사람들
밤 11시 무렵 공항 안에는 서로 다른 이유로 남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새벽 항공편을 기다리는 승객은 캐리어를 옆에 둔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첫 버스나 공항철도 첫차를 기다리는 시민도 있었다. 기자 역시 7일 오전 6시30분 이동편 승차권을 끊어둔 상태였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의 짐은 일반 여행객과 달랐다. 캐리어 외에 담요, 비닐봉지, 컵라면 용기, 생활용품처럼 보이는 물건이 짐수레에 함께 실려 있었다. 짐수레를 여러 대 붙여 세워두거나 통로 끝, 벽면 가까운 의자에 자리를 잡은 사람도 있었다.
기자도 공항 한쪽 긴 의자에 누워 잠을 청했다. 의자는 딱딱했고 몸을 옆으로 돌리기 어려웠다. 허리는 오래지 않아 불편해졌다. 안내 방송과 캐리어 바퀴 소리, 청소 장비가 지나가는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맞은편 의자에는 고령의 남성이 누워 있었다. 옆에는 캐리어와 짐수레가 붙어 있었고, 담요처럼 보이는 천이 놓여 있었다. "계속 여기 계셨느냐"고 묻자 그는 "그냥 왔다 갔다 한다"고 답했다. "어디 가시느냐"는 질문에는 "좀 있다 움직인다"고 했다. 더 말을 붙이자 그는 고개를 돌렸다.
공항 안에서 찾은 잠자리
공항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은 화장실과 식수대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출국장과 연결 통로 곳곳에는 화장실이 있었고, 일부 화장실 앞에는 식수대도 있었다. 물을 마시기 쉽고, 컵라면을 먹은 뒤 빈 용기를 씻어둘 수도 있었다. 다음 끼니에 같은 용기를 다시 써야 할 수 있어서다.
사람이 적고 비교적 조용한 휴식공간도 장기 체류자들이 머무는 자리였다. 이날 새벽, 공항 내 한옥 형태 휴식공간 주변에는 짐수레와 여행가방이 놓여 있었다. 일부는 여행객처럼 보였지만, 짐수레에 생활용품을 함께 싣고 오래 머무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이 공간은 출국장 한복판보다 발길이 적고 소음도 덜해 쉽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또 짐을 정리하기에 비교적 눈에 덜 띄었다.
자정이 지난 뒤 기자는 출국장과 닫힌 매장 앞 통로,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길, 화장실 주변, 한옥 휴식공간을 여러 차례 오갔다. 같은 의자에 누워 있던 사람은 새벽 2시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한 남성은 짐수레를 밀고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비슷한 구역으로 돌아왔다. 공항 안에서 이동은 가능했지만, 머무는 자리는 화장실과 식수대, 조용한 휴식공간 주변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 남성은 짐수레 옆에서 컵라면 용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식사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냥 알아서 먹거나, 넘길 때도 있다"고 말했다. "공항이 밖보다 낫느냐"는 질문에는 "추운 데보다는 낫다"고 짧게 답했다.
다른 남성은 공항에 자주 오느냐는 질문에 "계속 있는 건 아니다.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밖보다 공항이 나은지 묻자 그는 "비 오면 밖에 못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공항에서 만난 장기 체류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사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질문이 이어지면 말을 줄이거나 자리를 옮겼다.
여행객 눈에 들어오는 짐수레
공항 이용객들은 공항 노숙을 불편하게만 보지는 않았다. 냄새와 자리 점유 문제에는 불편을 말하면서도,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공항을 찾는 사정에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새벽 항공편을 기다리던 30대 여행객은 "처음에는 여행 수속 기다리는 분인 줄 알았다"며 "짐이 많고 계속 같은 자리에 있으니 오래 머무는 사람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무섭다기보다 신경은 쓰인다"면서 "그래도 어디 갈 곳이 없어서 여기 있는 거라면 뭐라고만 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공항철도 첫차를 기다리던 50대 시민은 "공항은 밤에도 밝고 화장실도 있으니 밖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은 든다"며 "다만 통로에 짐이 많거나 냄새가 나면 이용객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공항 내부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장기 체류자가 공항으로 들어오는 이유를 냉난방과 안전에서 찾았다. 그는 "여기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며 "서울역이나 지하도보다 깨끗하고 밝으니 공항으로 오는 사람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래 계속 보이는 사람도 있고, 자리를 옮겨 다니는 사람도 있다"며 "가족과 연락이 끊긴 건지, 돈이 아예 없는 건지, 사정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이어 "(음식을) 사 먹는 사람도 있고, 짐을 끌고 장소를 바꾸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민원과 계도 사이의 현장
새벽 공항은 조용했다. 출국장 한쪽에서는 첫 항공편을 기다리는 승객들이 캐리어 손잡이를 잡은 채 줄을 섰고, 청소 장비가 바닥을 지나가는 소리와 안내 방송이 이어지는 사이, 긴 의자에 누워 있던 사람들은 담요처럼 보이는 천을 접거나 짐을 다시 묶었다. 공항은 다시 여행객의 공간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일부 장기 체류자들은 여전히 같은 공간에 남아 있었다.
공항 직원들이 이들을 대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단순히 오래 머문다는 이유만으로 공공시설에서 내보내기는 어렵다. 공항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고, 밤늦은 시간에는 첫차나 새벽 항공편을 기다리는 이용객도 적지 않다. 겉으로만 봐서는 여행객인지, 일시적으로 쉬는 시민인지, 장기 체류 노숙인인지 곧바로 구분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체류가 길어지면서 민원으로 이어질 때다. 통로 한쪽에 짐수레가 여러 대 놓이거나, 긴 의자를 오래 점유하거나, 냄새와 소란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이용객의 불편으로 번진다.
현장 관계자는 "지저분하게 하거나 소란이 있으면 노숙인들에게 말을 걸 수밖에 없다"면서도 "강제로 내보내기는 어렵다. 민원으로 이어질 때도 있어 직원들도 조심한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인 여행객이 오가는 공간이라는 점도 공항 측에는 부담이다. 공항은 입국 직후 처음 마주하는 공간이자 출국 전 마지막으로 머무는 장소다. 이 때문에 통로에 사람이 누워 있거나, 장기간 놓인 짐과 냄새 문제가 드러나면 곧바로 공항 이미지와 이용객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는 "공항은 나라의 첫인상처럼 보이는 곳인데, 통로에 사람이 누워 있거나 냄새 문제가 생기면 민원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문제는 또 다르다"고 말했다.
공항 측 "사회복귀 지원하는 프로그램 운영"
인천공항공사는 장기 체류 노숙인을 별도로 파악하고 있다. 공항 관계자는 "T1과 T2를 합쳐 총 6명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2주 이상 장기 체류 노숙인을 기준으로 한 수치이며, 인원은 상시 변동된다고 설명했다.
공항 측은 노숙인을 발견하면 자진 귀가를 유도하거나 연고자에게 연락해 인계한다고 했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현장 계도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이어간다. 시설물 파손, 절도, 소란행위 등 공항 운영에 피해를 주는 상황이 발생하면 공항경찰단에 신고해 인계한다.
자활 지원도 진행하고 있다. 공항 측은 인천시 자활쉼터 '내일을 여는 집'과 협업해 전문 상담사가 노숙인을 상담하고 자활센터 입소 등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T1·T2 전체 노숙인을 대상으로 월 2회, 주간 1회와 야간 1회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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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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