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진 서강대학교 AI⋅디지털자산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2026년 새해를 맞이한 대한민국 디지털자산 업계에 다시금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금융당국이 디지털자산 거래소의 대주주 지분율을 15~2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당국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의 핵심은 규제의 내용 그 자체보다는, 그 규제가 만들어지고 시장에 전달되는 ‘방식’과 ‘절차’에 있다.


지난 2025년 한 해 동안 국회와 민관이 합동으로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위해 치열하게 머리를 맞댔을 때, 이 지배구조 제한 이슈는 주요 의제로 다뤄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해가 저물어가던 12월 말, 마치 돌발 변수처럼 등장하여 입법 논의의 중심에 섰다. 이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 깊은 아쉬움을 남긴다.


반복되는 ‘그림자 규제’의 관행


돌이켜보면 우리 디지털자산 시장은 규제의 내용보다 그 절차적 불투명성으로 인해 더 큰 혼란을 겪어왔다. 2017년과 2018년, ICO 전면 금지 조치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는 명문화된 법률 개정이 아닌, 관계 부처의 발표와 행정 지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법인 계좌 발급 제한 역시 명확한 법적 근거보다는 사실상의 행정적 권고로 작동해 왔다.


이러한 방식은 당장 급한 불을 끄는 데는 효율적일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규제, 사회적 합의 과정을 생략한 일방적인 정책 결정은 기업들에게 "언제든 룰이 바뀔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이번 지배구조 제한 논의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러한 과거의 패턴이 반복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과정’을 생략하지 않는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한다면, 규제를 만드는 과정 또한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중요한 규제를 도입할 때 행정절차법(Administrative Procedure Act)을 철저히 준수한다. ‘규제 제안 예고(NPRM)’를 통해 초안을 공개하고, 충분한 기간 동안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Public Comment)하며, 그 내용을 반영해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유럽연합(EU)의 미카(MiCA) 법안 역시 수년간의 초안 공개와 수차례의 공청회, 그리고 산업계와의 끊임없는 조율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이들이 시간이 많아서 그토록 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의 정당성과 수용성은 ‘결과’가 아닌 투명한 ‘절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듣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검토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규제의 권위를 만든다.


‘숙의(Deliberation)’가 필요한 시점


우리 금융당국 역시 효율성보다는 절차적 정당성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할 때다. 거래소의 지분 구조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시장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다.


그렇다면 응당 그 배경과 목적을 사회에 투명하게 설명하고, 공청회나 세미나 등을 통해 업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난 1년간의 기본법 논의 과정에서 빠져 있던 이슈가 막판에 갑자기 포함되어 추진되는 모습은, 자칫 행정 편의주의적인 접근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로 하여금 정부 정책을 신뢰하고 따르게 하기보다는,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들 뿐이다.


성숙한 규제 문화를 기대하며


2026년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시행착오를 넘어서야 한다. 정부의 행정 명령이나 일방적인 공지사항이 법률을 대신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예측 가능하고 투명한 입법 절차가 자리 잡아야 한다.


디지털자산 거래소의 지배구조 개선, 필요하다면 논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은 ‘통보’가 아니라 ‘대화’여야 한다. 왜 15%인지, 왜 20%인지, 이것이 시장의 경쟁과 혁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증적 데이터와 논리를 가지고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 규제만이 시장의 건강한 성장을 이끄는 약이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이번 사안을 계기로 시장과 소통하며 합리적인 합의를 도출해 내는, 한층 성숙한 규제 문화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