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테소네 취리히대 블록체인소장 인터뷰
‘금융 블록체인’ 혁신 선도국가 스위스
“규제 생겨나면서 생태계 명확성 자리잡아”
“블록체인, 탈중앙화 노력…소수에 권한 몰릴 수도”
“韓 전자기기와 블록체인 결합으로 가치 부여 가능”
클라우디오 스위스 취리히대학 블록체인연구소장이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와 공동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유동현·최지원(코리아헤럴드) 기자] 금융 블록체인이 일상에 스며든 미래가 궁금하면 스위스를 떠올리면 된다. 스위스에선 세계 최초로 설립된 ‘크립토 은행’(Crypto bank)에서 시민들이 금융 업무를 보고 일부 도시에서는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으로 세금 납부도 가능하다. 시내 환전소를 비롯한 역과 백화점 등에선 가상자산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찾아볼 수 있다. 일찍이 블록체인 가능성을 받아들인 스위스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금융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기업이 블록체인을 연구·개발하기 좋은 친화적 규제 환경이 마련되자 글로벌 플랫폼들도 스위스로 모여 들었다. 시가총액 2위 가상자산인 이더리움 재단 본사를 비롯해 카르다노, 폴카닷 등 1500개 넘는 블록체인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스위스는 높은 블록체인 상용화 수준과 연구 성지로 명성을 알리며 명실상부한 블록체인 혁신 국가로 꼽힌다.
“이더리움 출시 후 기업들 몰려…블록체인 규제 확립과 장기적 관점이 뒷받침”
클라우디오 스위스 취리히대학 블록체인연구소장이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와 공동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클라우디오 J. 테소네(Claudio J. Tessone) 스위스 취리히대학교 블록체인연구소(University of Zurich Blockchain Center) 소장(Chairman)은 최근 헤럴드경제·코리아헤럴드 공동 인터뷰에서 “스위스는 블록체인 생태계에 흥미로운 호흡의 장소(breathing place)”라며 “발전을 이끈 두 가지 요소는 기초를 확립하기 위한 규제 프레임워크와 일부 칸톤(Kanton·스위스 26개 주)의 블록체인에 대한 장기적 관점”이라고 설명했다.
스위스 내 가장 활발한 학술 연구 단지인 취리히대 블록체인연구소를 이끄는 테소네 소장은 지난달 말 열린 ‘고려대 사이버보안·개인정보호 국제 콘퍼런스 2025’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했다. 헤럴드경제와 코리아헤럴드는 스위스가 블록체인 혁신국이 된 배경과 현 블록체인 생태계 흐름 그리고 한국이 가야할 길을 주제로 그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테소네 소장은 규제 명확성이 스위스 블록체인 발전을 이끈 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스위스는 명확하고 안정적인 규제를 제공해왔다”며 “장기적인 비전이 오늘날 좋은 블록체인 생태계를 조성하게 했다”고 했다. “특히 2015년 이더리움이 성공적으로 출시된 이후 많은 프로젝트들이 스위스로 따라왔다”며 “이는 곧 스위스에 규제를 생겨나게 했지만 동시에 명확성을 자리 잡게 했다”고 했다.
그의 설명대로 스위스 블록체인 발전사에서 이더리움은 주요 분기점이다. 2014년 비탈릭 부테린 등 이더리움 공동창업자들은 스위스에 추크(ZUG)에 이더리움 재단을 설립하고 프로젝트를 구체화했다. 이들이 추크에 거점을 둔 배경은 블록체인이라는 신(新)기술이 개방적 태도 아래 받아들여지면서다.
테소네 소장은 “스위스는 매우 분권화된 국가”라며 “칸톤들은 자율성이 강해 투자와 비즈니스 분야에서 매력적인 방법을 스스로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더리움 창립자들은) 추크 시 경제부 장관에게 접근해 가상자산 대부분을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고, 시 정부는 새로운 기술에 매우 개방적이었다”며 “추크는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블록체인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도시”라고 했다.
추크시를 포함한 스위스의 블록체인 규제 확립기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2016년 자국 핀테크 시장에 대한 진입 장벽을 없애기 시작한 뒤 이듬해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블록체인 생태계 허용을 촉진했다. 2018년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은 전 세계 규제기관 중 최초로 ICO(Initial Coin Offering·코인 초기 공개) 및 토큰 분류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발표했다. 토큰의 종류에 따라 적용받을 수 있는 규제나 필요한 인허가 등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2019년에는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위한 가이드라인 공개, 2021년에는 전자 등록부를 통한 권리 거래를 인정한 거래분산원장기술(DLT) 법안 제정 등 규제틀을 꾸준하게 확립했다. 아직 가상자산 업권법이 부재한 한국은 물론 올해 스테이블코인 및 규제 관할권을 규정한 미국보다 수년 앞선 규제 환경을 갖췄다.
규제가 명확해지자 다양한 인력이 유입되고 학술 연구는 성장했다. 스위스 바젤 대학교(University of Basel)에서는 2018년 세계 최초의 블록체인 교수직이 생겨났다. 테소네 소장이 속한 취리히대 블록체인연구소는 2019년에 설립돼 25명 교수진이 4개 학부를 이끌고 있다. 이는 스위스 최대 규모이며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블록체인 연구 ‘허브’로 꼽힌다. 스위스는 국제적이고 우수한 인적 자원이 풍부한 국가로도 알려졌다. 세계지적재산기구(WIPO)가 발표하는 ‘세계혁신지수’에서 2011년부터 2023년까지 10년 이상 1위를 유지했다.
블록체인, 탈중앙화와 권력 불균형 공존…“엄청난 부와 자본이 이동하고 집중 ”
클라우디오 스위스 취리히대학 블록체인연구소장이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와 공동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테소네 소장은 블록체인의 가능성은 ‘탈중앙화’지만 ‘권력 불균형’ 우려가 공존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비트코인부터 오늘날의 모든 블록체인까지 경제적 관점에서 중요한 요소는 그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든지 간에 권력 집중을 줄이려는 노력이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블록체인 기술은 실제로 모든 금융 서비스를 탈중앙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완전한 탈중앙화 시스템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문제는 블록체인은 그(탈중앙화) 이상이라는 점이고 중앙집권화에서 탈중앙화로의 전환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경제적 힘이 부의 집중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고 그 반대의 결과를 만들고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블록체인은 이용자 참여를 이끌도록 인센티브가 필요한 복잡한 사회경제적 시스템”이라면서 “경제적 인센티브가 단순하거나 잘못 설계된 시스템만 있다면 자연스럽게 집중된 권력 불균형이 발생한다”고 했다.
테소네 소장은 이미 블록체인 생태계는 소수에 많은 권한이 부여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스템이 설계된 대로 발전하도록 내버려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적은 수의 손에 많은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엄청난 양의 자본과 부의 이동 및 집중이 이(블록체인) 시스템들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실명을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블록체인 중 일부는 이미 구조적으로 중앙 집중화됐다”고 부연했다.
집중화를 탈피하기 위해서 이용자는 교육을, 개발자는 설계 단계에서 주의를 당부했다. 테소네 소장은 “우리는 행위자들 간 발생하는 엄청난 권력 불균형과 상관없이 (블록체인) 금융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며 “모든 블록체인 규칙은 명확한 시스템 아래 움직이고 있지만 기본조차 이해하지 못하면 마치 슬롯머신처럼 보일 것이다. 이용자가 동전만 계속 넣게 되면 결국 모두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인다면 블록체인상에서 일어나는 사기를 알아챌 수 있다”며 “블록체인 금융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개발자들은 블록체인 설계가 단순히 컴퓨터 프로토콜을 설계하는 것이 아닌 사회경제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며 “경우에 따라 블록체인 규칙의 일부를 변경할 필요가 있고 이는 더 건강한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비트코인 성숙화 과정, 스테이블코인 ‘反탈중앙화’ 우려…“韓 전자기기 강점 기반 결합”
클라우디오 스위스 취리히대학 블록체인연구소장이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와 공동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테소네 소장은 비트코인의 의미 중 하나로는 ‘신규 결제 시스템 탄생’을 꼽았다. 그는 “비트코인이 탄생으로 좋아했던 부분은 블록체인 내부의 고유 자산이 고유한 가치를 지니며 지불되는 새로운 결제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를 토대로 우리는 지금과 같은 새로운 경제를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트코인은 다른 자산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산 유형”이라고도 했다.
비트코인이 성숙화 과정에 접어들면서 변동성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비트코인은 10여 년 동안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지만 최근 변동성은 낮아졌다”며 “시장 내 많은 참여자들이 변동성을 스스로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0년 전 비트코인 보유자들은 원시적인 전략을 가졌지만 현재 대량 보유자들은 이와 다르게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며 “큰 변동성이 발생해 손실을 초래할 수 있지만 이는 어떤 금융 시장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글로벌 결제 대금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만 종래에는 일부 국가의 통화 기능 약화를 초래할 것으로 내다봤다. 테소네 소장은 “스테이블코인 관련 모든 새로운 행위들은 스테이블코인이 그곳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는) 정부들도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도“장기적으로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영향은 약한 통화를 약화시킬 거란 점”이라며 “일부 국가들은 많은 경제적 자율성을 잃게 될 것이며 이는 탈중앙화에 반대된다”고 했다.
한국의 원화스테이블코인 도입은 ‘불가피한 선택’이라 평가했다. 테소네 소장은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을 채택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지만 불가피하다”며 “목표는 다차원적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세계 무대에서 (원화)스테이블코인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기 보다 (활용)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활용 방식을 유동적으로 접근해야한다”고 했다.
테소네 소장은 “한국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디지털화를 겪은 나라”라면서도 “아직 블록체인 분야에서는 발전 수준이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가상자산 자산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그간 매우 가혹했기 때문”이라며 “규제 부족으로 인해 명확성이 결여됐고 이에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사람들도 아직 임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잠재력은 갖췄다”고 했다.
그는 전자기기 강점을 기반으로 블록체인과 결합 시 시너지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가령 사물인터넷(IoT), 자율장치 등과 블록체인 간 결합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그는 “한국이 이미 강세를 보이고 있는 분야는 전자기기를 비롯해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구축할 수 있는 모든 물리적 장치”라며 “물리적 인프라와 퍼블릭 블록체인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연결하는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의 전체 생태계를 개발할 수도 있다”고 했다.
출저 : https://mbiz.heraldcorp.com/article/10607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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