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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허제가 키운 교육 불평등, 자산격차로 이어집니다
자녀가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님의 공통된 바람일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특히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양천구 목동은 자녀 교육과 성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힙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지역들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이곳에서 자녀 교육을 꿈꾸던 중산층 이하 가정들의 진입 기회가 크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육을 위한 주거 선택권이 자산을 가진 계층에게만 허용되는 현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KB부동산 월간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강남구 아파트의 3.3㎡당 평균 매매 가격은 1억531만원으로 전월 대비 5.7% 상승했습니다. 3.3㎡당 아파트 가격이 1억원을 넘은 것은 KB부동산이 관련 조사를 시작한 1986년 이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서초구는 9792만원, 송파구는 7569만원, 용산구는 7365만원으로 조사됐습니다. 강남3구와 용산구가 여전히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최상급지임을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시장 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실제로는 지정 직후에만 일시적으로 거래량을 감소시킬 뿐입니다. 장기적으로는 해당 지역을 '최상급지로 공식 인증'하는 역설적인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규제가 오히려 희소성을 더하고, 진입 장벽을 높여 이 지역의 가치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이후 해당 지역에서는 최소 2년간 실거주가 의무화되며, 전세 등 임대 목적의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는 전세 공급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졌고, 중산층 이하의 가정이 전세를 통해서라도 이 지역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했습니다. 결국 좋은 학군 지역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구만이 접근할 수 있는 폐쇄적인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거지 제한이 가져오는 문제는 심각합니다. 최근 의대 입시 결과가 이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2024학년도 전국 39개 의대 신입생 중 강남3구 출신 학생 비율은 13.29%였고, 서울대·연세대·성균관대·가톨릭대·울산대 등 빅5 의대에서는 이 비율이 21.3%에 달했습니다. 특히 정시 선발 비중이 높은 대학일수록 강남 출신 학생 비율이 높았습니다. 이는 강남 지역의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수능 중심 사교육 전략이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강남권에서는 이미 초등 의대반부터 시작해 의대 N수반까지 이어지는 사교육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교육 사다리에 올라설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이 바로 경제적 자산과 거주지 확보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즉, 토지거래허가구역 제도로 이 지역에서 교육받을 기회를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을 자산 기준으로 엄격히 나누고 있습니다.
학군 격차가 학벌 격차로 이어지고, 다시 소득과 자산 격차로 굳어지는 악순환은 더 큰 문제입니다. 좋은 학군에서 성장한 학생은 상대적으로 상위권 대학 진학과 좋은 직업을 얻기 쉽고, 이는 다시 자산 축적으로 연결돼 다음 세대의 교육 환경까지 유리하게 만듭니다. 반대로 좋은 학군 지역에 진입하지 못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경쟁을 하게 되고, 이러한 격차는 점점 벌어지게 됩니다.
부동산 정책이 시장 안정화와 투기 억제라는 본래 목표를 이루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정상적인 투자와 실수요자의 자산 형성 기회까지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제도가 특정 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일시적으로 억누를 수는 있지만, 결국 '최상급지'라는 시장의 인식을 강화시키며 더 큰 투자 수요를 부추기는 역설적인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자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규제 일변도의 접근보다는 합리적인 투자와 자산 축적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특히 학군 등 주거 프리미엄이 높은 지역에 대해 투자 수요를 인정하고, 중산층 이하의 가정도 우량한 입지에서 자산 형성과 교육 투자를 동시에 이룰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전세 물량을 탄력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부분적 임대 허용 등 제도적 완화가 필요하며, 중산층 이하의 실거주 수요자에게는 보다 유연한 진입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현재 특정 지역에만 집중된 교육 인프라를 합리적으로 분산해 다른 지역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들고, 이를 통해 지역 간 부동산 자산 가치 격차를 줄이는 정책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결국 부동산 정책은 단순히 규제와 억제가 아닌, 합리적인 투자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자산 형성과 안정적 주거 환경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돼야 합니다. 토지거래허가제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합니다. 특정 계층만 독점하는 구조가 아니라 모든 계층이 투자와 기회를 공정하게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소지가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5088254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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